고 조 선 |
고구려 왕실 연대표
| 고조선 | 기자조선 | 고구려 | 백제 | 신라 | 가락 | 발해 | 고려 | 조선 | 대한민국 |
고구려시대(高句麗, B.C 37 ~A.D 668, 705년간, 총28대)
代 | 왕명 | 재위 | 약사 |
1 | 동명성왕 B.C 58~B.C 19 | B.C 37 | 성은 고(高), 원래 성은 해(解). 휘는 주몽(朱蒙). 해모수의 아들 해부루와배다른 형제라고도 한다. 동부여(동부여)의 금와의 아들 대소의 모해를 피하여 압록강 연안인 졸본천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고구려(졸본부여)라 함. |
2 | 유리왕(榴璃, ?~18) | B.C 19 | 성은 해(解). 휘는 유리(榴璃). 동명성왕 아들. 왕22년에 도읍을 국내성으로 옮기고 왕33년에 한(漢)나라의 고구려현을 빼앗음. 유리명왕(榴璃明) |
3 | 대무신왕(大武神, 4~44) | 18~44 | 성은 해(解). 유리왕 셋째아들. 휘는 무휼(無恤). 동부여, 개마국을 쳐서 병합하고, 국토를 살수 이북까지 넓혔음. 낙랑군을 정벌함. |
4 | 민중왕(閔中, ?~48) | 44~48 | 성은 해(解). 휘는 색주(色朱). 대무신왕의 동생. 대무신왕의 태자가 나이가 어려 대신 즉위함. |
5 | 모본왕(慕本, ?~53) | 48~53 | 이름은 해우(解憂),해애루(解愛婁). 민중왕의 형. 성품이 사납고 정사를 돌보지 않아 신하 두노(杜魯)에게 피살됨. |
6 | 국조왕(國祖, 47~165) | 53~146 | 7살의 나이로 즉위. 영토를 확장하고 부족국가의 틀을 벗어나 중앙 집권적 국가의 기틀을 마련함. 태조왕(太祖王) |
7 | 차대왕(次大, 71~165) | 146~165 | 휘는 수성(遂成). 국조왕 동생. 태조로 부터 왕위 계승을 반대한 우보(右輔), 고복장(高福章)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으나 학정과 횡포를 일삼다가 신대왕에게 시해됨. |
8 | 신대왕(新大, 89~179) | 165~179 | 휘는 백고(伯固). 국조왕의 막내동생. 차대왕의 횡포로 산에 숨어지 내다가 차대왕이 시해된 후 왕위에 오름. |
9 | 고국천왕(故國川, ?~197) | 179~197 | 휘는 남무(南武). 빈민 구제책으로 진대법을 실시함. 국양왕(國壤) |
10 | 산상왕(山上, ?) | 197~229 | 휘는 연우(延優), 위궁(位宮). 고국천왕의 아우. 고국천왕이 아들없이 죽자 즉위함. |
11 | 동천왕(東川, ?~248) | 227~247 | 휘는 우위거(憂位居). 산상왕의 아들. 248년에 신라와 화친함. 동양왕(東襄) |
12 | 중천왕(中川, ?~270) | 247~270 | 동천왕의 아들 |
13 | 서천왕(西川, ?~292) | 270~292 | 휘는 약로(藥盧), 약우(藥友) |
14 | 봉상왕(烽上, ?~300) | 292~300 | 휘는 상부(相夫), 삽시루. 왕2년과 5년에 연나라 의 침입을 격퇴했으나 사치와 방탕에 빠져 국상(國相) 창조리(倉助利)에게 폐위되자 자살함. |
15 | 미천왕(美川, ?~331) | 300~330 | 휘는 을불(乙弗), 우불(憂弗). 현도군을 공격하고 낙랑군을 점령하는 등 영토확장에 공을 세웠음. 호양왕(好讓) |
16 | 고국원왕(故國原, ?~371) | 331~371 | 휘는 사유(斯由), 쇠(釗). 백제 근초고왕과 평양에서 싸우다 전사함. |
17 | 소수림왕(小獸林, ?) | 371~384 | 휘는 구부(丘夫). 고국원왕 아들. 왕2년에 중국 전진(前秦)으로 부터 순도(順道)가 불상과 경문을 가져오자 이를 받아들여 최초로 불교를 수입함 |
18 | 고국양왕(故國壤, ?~391) | 384~391 | 휘는 이련(伊連). 요동과 백제를 정벌하여 국토를 넓혔음 |
19 | 광개토대왕(廣開土, 374~413) | 391~413 | 휘는 담덕(談德). 불교를 신봉하였고, 영토를 만주와 한강 이북을 차지하는 등 고구려의 전성시대를 이룩함. 호태왕(好太),영락대왕(永樂) |
20 | 장수왕(長壽, 394~490) | 413~490 | 성은 고씨, 휘는 거련(巨連),연(璉). 광개토대왕 맏아들. 남하 정책을 착수 하여 왕 63년에 백제의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였음. 왕 68년에 신라의 7개성을 함락시킴. |
21 | 문자명왕(文咨明, ?~519) | 491~519 | 휘는 나운(羅雲) 장수왕의 손자. 왕3년에 부여를 멸망 시키고, 신라와 백제를 여러차례 침공하여 영토를 넓혔음. 명치호왕(明治好). 문자왕. |
22 | 안장왕(安藏, ?~531) | 519~531 | 휘는 흥안(興安) 문자왕의 맏아들. 백제와 두차례 싸움. |
23 | 안원왕(安原, ?) | 531~545 | 휘는 보연(寶延). 안장왕의 아우. 양(梁)나라, 동위(東魏)와 수교 하였음. |
24 | 양원왕(陽原, ?~559) | 545~559 | 휘는 평성(平成). 돌궐의 침입을 격퇴 하였으나 신라, 백제의 침공을 많이 받았음. |
25 | 평원왕(平原, ?~590) | 559~590 | 휘는 양성(陽城). 중국의 진(陣), 수(隨), 북제(北齊) 등과 수교함. |
26 | 영양왕(瓔陽, ?~618) | 590~618 | 휘는 원(元). 왕9년에 수나라 문제의 30만 대군을 격퇴. 왕23년에 수양제가 113만 대군으로 침입하자 을지문덕(乙支文德)이 섬멸 하였음.평양왕(平陽) |
27 | 영류왕(榮留, ?~641) | 618~641 | 휘는 건무(建武). 외교를 잘하여 수양제에게 잡혀간 포로를 찾아왔으며, 도교(道敎)를 처음으로 받아들임. 연개소문(淵蓋蘇文)에게 살해당함. |
28 | 보장왕(寶藏, ?~681) | 642~668 | 연개소문에 의하여 왕위에 오름. 당의 고종이 이세적(李世勣)을 보내 쳐들어오고 신라가 쳐들어와 고구려는 망하였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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발해 왕실 연대표
| 고조선 | 기자조선 | 고구려 | 백제 | 신라 | 가락 | 발해 | 고려 | 조선 | 대한민국 |
발해(渤海, 699~926 , 227년간, 총15대)
代 | 왕명 | 재위기간 | 약사 |
1 | 고왕(高, ?~719) | 699-719 | 휘는 대조영(大祖榮). 고구려의 유민으로 고구려 유민과 말갈 족을 규합하여 동모산(東牟山, 길림성 동화)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진(震)이라함. 연호를 천통(天統)으로 함. 713년 고구려 영토를 거의 회복하고 국호를 발해로 고침. |
2 | 무왕(武, ?~737) | 719~737 | 휘는 대무예(大武藝). 일본과 국교를 맺어 문물을 교환하고 당나라를 공격함. |
3 | 문왕(文, ?~?) | 737~793 | 휘는 대흠무(大欽茂). 서울을 용천부(龍泉府)로 옮기고 관직제도를 정비 했으며, 주자감(胄子監)을 설치하는 등 문화 발전에 힘씀. |
4 | 대원의(大元義, ?~794) | 793~794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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5 | 성왕(成, ?~795) | 794~795 | 휘는 대화여(大華與). 문왕의 손자. 연호를 중흥(中興)으로 고치고 상경(上京)으로 서울을 옮김. |
6 | 강왕(康, ?~809) | 795~809 | 휘는 대숭린(大崇隣). 문왕의 아들. 연호를 정력(正曆)이라 함. 일본, 당나라 등과 사신왕래, 문물교환을 활발히 함. |
7 | 정왕(定, ?~813) | 809~812 | 휘는 대원유(大元瑜). 연호를 영덕(永德)으로함. |
8 | 희왕(僖, ?~817) | 812~817 | 휘는 대신의(大言義). 연호를 주작(朱雀)으로 고침. 당나라와 교류하여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임. |
9 | 간왕(簡, ?~818) | 817~818 | 휘는 대명충(大明忠) 연호를 태시(太始)라함. |
10 | 선왕(宣, ?~830) | 818~830 | 중국으로 부터 해동성국(海東盛國)이라 불리는 전성기를 이룩함. 고구려의 옛땅을 대부분 회복하여 영토가 동쪽으로는 연해주, 서쪽으로는 개원(카이위안), 남쪽으로는 함경남도 정평, 북쪽으로는 헤이룽강(흑룡강)에 이르렀음. |
11 | 대이진(大彛震, ?~858) | 830~858 | 선왕의 손자. 연호를 함화(咸和)로 고침. |
12 | 대건황(大虔晃, ?~871) | 858~871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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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3 | 대현석(大玄錫, ?~892) | 871~894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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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4 | 대위해(大瑋?, ?~906) | 894~906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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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 | 대인찬(?~926) | 906~926 | 103개의 성이 모두 거란에 점령되어 발해 멸망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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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려 왕실 연대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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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려시대(高麗, 918~1392, 473년간, 총 34대)
代 | 왕명 | 재위기간 | 약사 |
1 | 태조(太祖, 877~943) | 918~943 | 이름은 왕건(王建). 신라 궁예의 부하로, 부하에게 옹립되어 송도에 도읍을 정하고 왕위에 오름. 935년 신라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함 |
2 | 혜종 | 943~945 | 휘는 무(武). 태조의 맏아들. 대광인 왕규(王規)의 음모에 신경쓰다 병사함. |
3 | 정종(定宗, 923~949) | 945~949 | 왕규의 난을 평정하고 불교를 숭상함. 서경(평양)에 왕성을 쌓고 천도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. |
4 | 광종(光宗, 925~975) | 949~975 | 휘는 소(昭). 자는 일화(日華). 노비 안검법을 제정하고,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(雙冀)의 건의에 따라 과거제를 실시함. |
5 | 경종(景宗, 955~981) | 975~981 | 휘는 주(인宙). 자는 장민(長民). 광종의 아들. 전시과를 제정함. 방탕한 생활로 정사를 돌보지 않았음. |
6 | 성종(成宗, 960~997) | 981~997 | 휘는 치(治). 문물제도를 정비하고, 유교를 국가지도의 원리로 삼아 중앙집권적 봉건제도를 확립함. |
7 | 목종(穆宗, 980~1009) | 997~1009 | 휘는 송(誦). 경종의 맏아들. 전시과를 고치고 학문을 장려 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강조(康兆)에게 피살됨. |
8 | 현종(顯宗, 992~1031) | 1009~1031 | 휘는 순(詢). 천추태후의 강요로 중이 되었다가 강조의 옹립으로 즉위함. 거란의 침입으로 혼란 하였으나, 강화하여 국내가 안정되고 문화가 발전함. |
9 | 덕종(德宗, 1016~34) | 1031~1034 | 휘는 흠(欽). 왕 2년에 천리장성을 쌓고, 국사편찬 사업도 완성함. |
10 | 정종(靖宗, 1018~46) | 1034~1046 | 휘는 형(亨).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고, 장자 상속과 적서 구별을 법으로 정하였음. |
11 | 문종(文宗, 1019~83) | 1046~1083 | 휘는 휘(徽). 자는 촉유(燭幽). 많은 법류을 제정하여 내치의 기초를 닦음. 학문을 좋아하고 서예에 능함. |
12 | 순종(順宗, 1046~1083) | 1083 | 문종의 맏아들로 즉위한 해에 죽음. |
13 | 선종(宣宗, 1049~1094) | 1083~1094 | 휘는 운(運). 문종의 둘째 아들. 동생인 대각국사 의천(義天)이 중국 송나라에서 불경을 연구하고 오는등 고려문화의 융성기를 이룸. |
14 | 헌종(獻宗, 1084~1097) | 1094~1095 | 휘는 욱(昱). 즉위하자 이자의(李資義)의 난을 평정하고, 다음해에 신병으로 숙부에게 왕위를 물려줌. |
15 | 숙종(肅宗, 1054~1105) | 1095~1105 | 문종의 셋째아들. 조카인 헌종을 폐위 시키고 즉위함. 해동통보를 주조하여 화폐제도를 시작, 고려의 황금시대를 이룸. |
16 | 예종(睿宗, 1079~1122) | 1105~1122 | 휘는 우. 학문을 좋아하여 학교를 세우는 등 학문을 크게 진흥 시켰음. |
17 | 인종(仁宗, 1109~1146) | 1122~1146 | 휘는 해(偕). 어린나이로 즉위하여 이자겸의 난, 묘청의 난 등을 격었으나 선정을 베품. 김부식에게 삼국사기를 편찬케 함. |
18 | 의종(毅宗, 1124~1173) | 1146~1170 | 휘는 현(晛). 인종의 맏아들. 무신을 천대하고 문신을 우대하다 정중부(鄭仲夫)의 난이 일어나 폐위되고, 명종3년에 경주에서 살해됨. |
19 | 명종(明宗, 1131~1202) | 1170~1197 | 휘는 호(皓). 의종의 동생. 정중부의 추대로 즉위하고 최충헌(崔忠獻)에 의하여 쫏겨남. |
20 | 신종(神宗, 1144~1204) | 1197~1204 | 휘는 탁(晫). 인종의 다섯째 아들로 최충헌이 옹립한 왕임. |
21 | 희종(熙宗, 1181~1237) | 1204~1211 | 휘는 영. 신종의 맏아들. 최충헌을 없애려다 오히려 쫏겨남. |
22 | 강종(康宗, 1152~1213) | 1211~1213 | 휘는숙(璹), 정, 오. 명종의 맏아들. 명종과 함께 쫏겨났다가 최중헌에게 옹립되어 왕위에 오름. |
23 | 고종(高宗, 1192~1259) | 1213~1259 | 몽고의 침입을 받아 강화로 천도한 뒤 28년동안 항쟁 하였으나 결국 굴복함. 몽고를 불교의 힘으로 격퇴하기 위하여 팔만대장경을 조판함. |
24 | 원종(元宗, 1219~1274) | 1259~1274 | 휘는 정(禎). 몽고에 굴욕을 당한 뒤 즉위. 임연(林衍)의 난, 삼별초의 난 등으로 화평한 날이 없었음. |
25 | 충렬왕(忠烈, 1236~1308) | 1274~1308 | 원(元)나라에 굴복하여, 원의 제국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이는 등 원나라의 지나친 간섭을 받았음. |
26 | 충선왕(忠宣, 1275~1325) | 1308~1313 | 휘는 장(璋). 몽고 황실의 딸과 결혼하고 1298년 왕위에 올랐으나 7개월만에 충렬왕이 다시 복위.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 다시 즉위하여 원나라에서 국정을 봄. 고려와 원나라의 학문교류에 힘을 씀. |
27 | 충숙왕(忠肅, 1294~1339) | 1313~30, 32-39 | 휘는 도(燾). 정사에 염증을 느껴 아들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다가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함. |
28 | 충혜왕(忠惠, 1315~1344) | 1330~32, 39-44 | 휘는 정(禎). 행실이 좋지 않아 정사를 혼란에 빠뜨렸음. 원나라로 귀양을 가다 병사함. |
29 | 충목왕(忠穆, 1337~1348) | 1344~1348 | 휘는 흔(昕).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에 원나라에 의하여 즉위함. 어머니 덕녕공주(德寧公主)가 섭정함. |
30 | 충정왕(忠定, 1337~1352) | 1348~1351 | 휘는 저. 12세에 즉위하여 외가친척인 윤시우(尹時遇)와 배전(裵佺) 등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, 왜구의 침입이 잦아 3년만에 폐위됨. |
31 | 공민왕(恭愍, 1330~74) | 1351~1374 | 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 친원파인 기(奇)씨 일족을 제거하고,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여 국위를 떨침. 말년에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 최만생 (崔萬生)과 홍륜(洪倫)에게 시해 당함. |
32 | 우왕(禑, 1364~1389) | 1374~1388 | 공민왕의 아들. 10세에 즉위하나 1388년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에게 폐위됨. |
33 | 창왕(昌, ?) | 1388~1389 | 이성계 등이 우왕을 내쫏은후, 창왕을 내세웠으나 1년만에 강화도로 쫏겨나 10세때 시해됨. |
34 | 공양왕(恭讓, 1345~1394) | 1389~1392 | 휘는 요. 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실권을 빼앗기고, 정몽주가 살해당한 후 폐위 당하고 고려는 멸망함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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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출처] 고조선부터 역사 년대표|작성자 노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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